3月 012013
 

성미산 학교를 견학하는 투어 멤버

NPO법인 일본희망제작소가 기획한 서울 공정여행「서울에서의마을만들기~사회적기업,빈곤 대처를 둘러싼 여행」에 참가했다.
(2012년 8월 24일‐26일)
방문지인 대도시 서울의 두 마을은 마을의 성립과정에 있어서 다른 점은 있지만, 두 마을 모두 지역주민에 의한 참가 ・협동 ・합의형성 ・자발성을 중요시하고, 「스스로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가 만든다」「자신들의 마을 환경은 스스로가 지킨다」라는 사례를 볼 수 있었다. 도시 속에서 어떤 방법으로 커뮤니티를 만들지는 도쿄에서도 긴급도가 높은 중요한 테마이다. 귀중한 힌트를 얻은 이번 여행에서 돌아와 보고한다.

한국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을 No1.
마포구 – 성미산 ・마을

맨 처음 방문한 마을, 성미산 마을은 서울시의 중심부인 마포구의 표고 60m의 작은 산을 둘러싸듯이 위치해 있다. 1994년, 이 지역에 집단이주한 30대의 맞벌이 부부 25세대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공동육아시설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지역사람들의 유대관계가 서서히 확대되었다. 공동육아활동은 어린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학동보육 등 새로운 장소 만들기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속담대로 필요를 느낄 때마다 아이디어를 짜 내는 활동으로 발전.
현재는 음식의 안전을 위해 설립된 「생협」이나, 「협동 주택」 「커뮤니티・레스토랑」 「극장」 「리사이클 숍」 「미니 FM방송국」 등, 실로 70개를 넘는 다채로운 활동과 「마을 기업」이라고 불리는 사업체가 지역 주민의 참가와 자치로 운영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2004년에 설립된 「대안 학교」다. 대안 학교 「성미산 학교」는 지역 사람들이 자금을 서로 나누어 내고, 자신들의 이념에 맞는 교사를 채용하여 운영하는 「지역립」의 학교로, 일본에서 말하는 프리스쿨이다. 초・중・고등학교가 있지만, 설립한지 8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고등학교 졸업자는 없다. 이곳을 졸업하여 사회로 나갈 아이들이 어떠한 미래를 만들어 갈지 매우 기대된다.
2001년, 성미산에 배수 시설을 건설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이 있었다. 이 때도 반대하는 주민운동이 일어나 이 운동이 지역의 유대관계를 한층 더 강하게 하였다. 당시의 시장은 현 대통령(당시) 이명박씨. 계획은 시민의 힘에 의해 저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정지에는 지역 사람들의 힘으로 나무 심기가 이루어져,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공공의 장소・휴식의 장소가 되었다. 행정의 지원을 목표로 하지 않고, 스스로의 손으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정열과 에너지에 감명을 받았다.

마포 두레 생협, 5700 가구가 참여


박 서울 시장이 내 건
도시 커뮤니티 복원의 도전

 
서울시에서는 2011년 10월 시장 보궐 선거에서 시민운동 출신의 인권파 변호사・박원순씨[주 2]가 당선되어 화제가 되었다. 박원순시장이 취임 직후부터 연이어 내세운 혁신적인 정책중의 하나가 「커뮤니티의 복원」이었다.
 성미산마을과 같은 주민자치 마을을 15개소 만들 계획이 밝혀져 이 사업을 실현하기 위해서 「마을 지원 센터」도 개설되었다. 한국에도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나 결혼해도 아이를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등, 가족 단위의 사회로부터 개인을 중심으로 한 사회로 변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 필요로 하는 관계를 지역에 요구하게 되어 지연적 공동체인 마을에 관심이 급속히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주민 주체로 지역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새로운 마을 만들기에 기여하기 위해, 마을 지원 센터에서는 다양한 제안과 지원을 진행시킬 예정으로 향후의 전개가 국내외로부터 주목 받고 있다.
 한국 서울에서 살고 싶은 마을 중 No.1 마을, 이주 희망자도 국내외의 시찰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 마을,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가장 충실한 마을, 과연, 그것이 성미산・마을인 것을 실감했다.

재건 마을. 뒤에 세워져 있는 것은 부유층이 사는 고층 아파트


일과 생활이 양립하는
커뮤니티 만들기를 지향하는
강남구―재건 마을

 또 하나의 방문지인 재건 마을은 저소득자층의 거주지역으로, 부유층 대상의 수많은 고층맨션이 숲을 이루는 강남구 일각에 있다.
 간이한 구조의 바라크 주택이 처마를 나란히 하고 있다. 화장실은 공동, 집회실이나 식당, 아이들의 공부방 등도 모두의 공유 스페이스이고 주거 스페이스와는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부지의 구석에는 멋진 채소밭도 있다.
한국이 군사 정권하에 있던 1981 년, 정부는 전쟁 고아와 부랑자를 전국에서 이 지역에 강제 이주시켰다. 경찰의 관리하에 재활용 등의 업무에 종사하게 된 사람들은 “자활근로대”라 불리었다. 주민에게 구두약속으로 토지와 거주지가 주어졌다. 그러나 1988 년 서울 올림픽 때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지역 밖으로 나오는 것이 금지되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 이번에는 자활근로대의 해산과 구획정리가 갑자기 결정되어 주민들은 “불법 점거자 ‘가 되고 시는 퇴거할 것을 요구했다. 그 후 경찰 권력에 맞서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치열한 주민 투쟁이 계속되어 왔다.
재건마을의 주민들은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박 시장의 등장에 의해 서울시가 “합의가 없는 재개발은 하지 않겠다”라는 방침을 밝힌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재건마을주민 모두의 희망은 안심하고 오래 살 수 있는 코포라티브 주택의 건설 과 일과 생활이 양립하는 사회만들기에 있다. 현재 참가・협동・합의형성을 중심 의제로 워크숍을 거듭하면서 재건 마을의 미래상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사람들은 전례에 없을 정도로 유대관계를 중요시하고 사회의 본연의 모습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 하고 있다. 서로를 존중하고 납득이 갈 때까지 논의하며 필요한 기능을 스스로 만들어 내고 마을을 운영하는 – 서울의 두 사례에서 얻은 힌트를 활용하여 우리의 도시・도쿄의 도시 만들기에 반영하고 싶다.

니시자키 미츠코(도쿄 생활자 네트워크 대표위원 / 도의회의원) (원문: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