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月 242014
 

내가 한국어를 공부해 온 것은 이걸 위해서였구나! 라는 운명적인 일이 올해 5월에 일어났다. 트위터에서 “인천아시안게임 공인 블로그 라이터(IAG Crew) 모집. 특히 일본에서의 응모를 기다린다”는 트윗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볼 때까지는 아시아경기대회가 올해 있다는 것도 개최지가 인천인 것도 몰랐다. 오래전부터 스포츠의 국제적인 대회에 관여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 한국에서 개최된다면 평소 공부하고 있는 한국어를 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마감 직전이었음에도 망설이지 않고 응모했다. 그리고 IAG Crew Japan으로서 이름이 발표됐을 때는 대학 합격 발표를 보았을 때와 같은 기쁨이었다.

원래 한국어로 트위터를 시작한 것은 한국어로 쓰는 것에 익숙해지려는 것과 동시에 보통 일본인이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모습을 발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들려오는 반일이나 혐한의 보도에 질려 보통 일본인이 어떻게 생활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발신하고 평소의 일본인은 한국 사람들과 다름없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트위터를 시작한 것을 계기로 우연히 인천 아시아경기대회에 관한 정보를 보고 취미인 스포츠 관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아시아 최대의 스포츠 축제에 관계자로서 관여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를 접하게 되었다. 이를 “운명”이라고 하지 않으면 뭐라 할까?

그리고 실제로 현지에서 보낸 16일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근사한 체험이 되었다.

인천에서는 아시안게임 공인 블로그를 위해 영어로 기사를 쓰고 SNS서포터로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Facebook이나 트위터로 전달하는 임무를 맡아서 가능한 한 다양한 경기장을 찾아가 경기가 열리고 있는 모습이나 회장 안팎에서의 일을 관찰해 전하도록 노력했다. 언론 보도에서는 대회 운영의 미비가 많이 전달되었지만 여러 사람이 열심히 운영에 참여하여 대회를 돕고 선수들을 북돋우는 모습이 내 눈에는 더 많이 비쳤다.

각 회장에서 “안녕하세요.”라고 상냥하게 인사해 주는 자원봉사자들, 셔틀버스 정류장에 대기하며 다양한 질문에 대응해 주는 담당자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데 어떻게 가는지를 함께 생각해 주거나, 나를 전문 기자라고 착각해 경기 시간에 맞추려고 대기 중의 셔틀버스를 일부러 내준 친절한 안내원 아저씨도 있었다. 아무래도 서두를 때는 택시를 이용했는데 택시기사님들과의 대화도 재미있었다. 인천에는 옛날 목재상이 많았던 것, 예산 사정으로 예정된 인천 지하철이 완전히 개통하지 못한 것, 한국보다 일본은 거리가 깨끗하다는 등, 개회식 날에 주 경기장까지 태워다 주신 택시 기사님은 최고의 안내인・국제교류대사였다.

경기장 관객들의 모습도 아주 흥미로웠다. 한국 사람들은 어른부터 아이까지 “대한민국, 화이팅!”을 외치며 자기 나라 선수들을 굉장히 열심히 응원했다. 때로는 일본 선수를 응원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배구장에서 “닛폰 간바레 (일본 힘내라)!” 라고 큰 목소리로 성원을 보내고 있는 아저씨에게 말을 걸어보았더니 한국분이었다. 일본에 친구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일본을 응원하고 있다는 듯. “나라끼리는 난해한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사이좋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말씀도 하셨다. 기뻤다. 또 바로 옆에 앉아 계시던 노부부는 보온병에 담아 온 커피와 과자를 나에게 주셨다. 셔틀버스 정류장을 묻자 자원봉사 청년이 일부러 타는 곳까지 데려다 주었다. “한국은 배구가 강하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일본도 강하네요.”라고. 그 젊은이는 11월에 군대에 가기 전에 봉사 활동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한 경기장에 갔을 뿐인데도 인정미 넘치고 맡은 바 일에 진지한 한국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천에서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는 홈스테이였다. 인천국제교류재단에 16일 동안 홈스테이를 신청했더니 두 가족을 소개받았다. 여러 가족과 교류하고 싶었기 때문에 두 가정에서 8일씩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 묵었던 가정은 중학생 아이가 둘 있는 4식구이고 아버지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고 어머니는 주부로서 가족 모두의 생활을 돌보고 있었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까지 보낸 후 남편 아침을 준비하고 낮에는 가게에 도시락을 만들어 가서 가게 일을 돕고 밤에는 10시에 아버지가 11시에 아이들이 학원에서 돌아오면 각각의 식사나 야식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거의 매일 학원에 다니느라 동아리 활동을 할 여유도 없이 맨날 공부만 하고 있어 조금 불쌍했지만 밤늦게 귀가해도 일가 단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야식을 먹으면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고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락방송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아이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거나 했다. 가족처럼 같이 지낼 수 있어 아주 즐거웠다.

두 번째 홈스테이 가정은 30대 부부였다. 부인이 일본어를 공부 중이라 가끔 일본어를 섞어서 이야기했다. 부인이 공항 근무라서 새벽에 출근할 때는 남편이 나의 아침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부인은 요리를 좋아해서 밤늦게 퇴근해도 직접 저녁 식사를 만들고 아침 식사 준비도 했다. 맞벌이 부부가 함께 부엌에 서서 서로 돕는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흐뭇한 광경이었다. 근처 역까지 데려다 준 것뿐만 아니라 쇼핑과 관광도 함께 해주었다. 직장 일도 바쁜데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 주어서 감사한 마음밖에 없었다.

애초 홈스테이를 신청했을 때에는 과연 일본인 아줌마를 누가 받아 들여줄지 걱정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언론은 센세이셔널한 부분만 강조하기 때문에 일본에 있으면 한국에서는 반일 국민들만 있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체류 중에 일본인이라서 안 좋은 일을 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천에서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감동의 연속이었고 홈스테이 가족에게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 이전보다 더 한국과 한국 사람들이 좋아졌다.

나라의 체면과 언론의 과잉 보도가 만든 한일 양국 간의 장벽을 허물려면 일본과 한국 양측의 시민들이 직접 교류하는 기회를 늘려 끊임없이 대화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를 성숙시켜 가는 게 제일이 아닌가 싶다. 나도 이번 인천에서의 경험을 여러 사람에게 전해서 지금까지 이상으로 상호 이해의 촉진에 도움이 되고 싶다.

글: 다스제 나오코 / “소통을 위한 한글” 강좌 수강생

(일본어) 仁川アジア大会を通して出会った素顔の韓国の人たち